책임(Responsibility / 責任)

“저 분명히 제출했어요. 현장에서 당신네 직원들이 제 휴대폰으로 구글폼 누르는 거 확인까지 했다고요!”

아침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약 1천 명을 대상으로 홍보효과조사를 진행했고, 설문 참여자에게는 선착순으로 1만원권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더랬다. 전화를 건 분은 본인보다 늦게 설문자를 제출한 친구도 받았는데, 왜 자신에게는 상품권이 오지 않느냐 따져 물었다. 즉시 데이터를 찾아보았지만, 그 분의 설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제출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서…”

“무슨 소리예요! 나는 무려 20분이나 할애해서 당신네 직원들 설득에 넘어가 참여한 거예요. 시스템이 잘못된 건 내 책임 아니잖아요. 당신이 책임지고 상품권 내놔요!”

십 분간 같은 말이 반복되었다.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비로 상품권 하나 사서 보내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기분이 씁쓸했다. 억울했다. 이게 정말 내 책임인가? 대체 책임이란 무엇인가.

[밖] 어원: 빚을 갚는 마음으로, 부름에 응답하는 일

동양(責任): 꾸짖을 책(責) + 맡길 임(任)

책(責) 글자는 가시 돋친 채찍(𢼄)과 돈(貝)이 합쳐진 모양이다. 본래 ‘빚을 독촉하다’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조개껍데기는 화폐였고, 채찍질하듯 빚을 갚으라 다그치는 행위가 바로 ‘책’이었다. 즉, 책임이란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빚)을 마땅히 갚아야 하는 상태, 혹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오는 채찍질을 감내하는 것이다.

임(任)은 사람(人)이 짐 보따리(壬)를 등에 지고 있는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맡겨진 ‘무거운 짐’을 피하지 않고 짊어진 사람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동양의 책임은 ‘빚을 갚는 것’에서 시작한다. 억울한 클레임을 마주했을 때 우리 몸이 먼저 느끼는 압박감은 바로 그 ‘채찍(責)’의 느낌이다. “너의 일이니 네가 해결해”라는 타인의 날 선 요구는 내가 빌리지도 않은 빚을 갚으라는 독촉처럼 다가온다.

서양(Responsibility): Response(응답) + Ability(능력)

라틴어 respondere에서 유래했으며, 누군가의 부름이나 질문에 ‘대답하다’는 뜻이다. 이상하다. 단순히 답을 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무가 없지 않나?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Respond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espondere는 Re-(다시)와 Spondere(약속하다)가 합쳐진 말이다. 여기서 Spondere’는 단순히 말로 하는 약속이 아니라,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하는 ‘엄숙한 서약(Vow)’을 뜻한다.

즉, 서양에서 말하는 Responsibility는 “너 맹세했지? 그럼 그 물음에 네 삶으로 증명해봐”라는 요구에 답하는 일이다. 대답을 못 한다는 건 곧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의미이다. 매우 엄중하다.

[안] 사회적 속뜻 : ‘내 잘못인가’와 ‘내 일인가’의 경계

책임(責任)은 종종 도덕이나 희생의 문제로 치환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책임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책임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의미의 충돌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상태에 가깝다.

완전히 풀리지도, 완전히 묶이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 매듭. 그 팽팽한 실을 손에서 놓지 않고, 당장 터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자세. 그것은 회피도 아니고, 항복도 아니다. 대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일이다.

데이터가 유실된 것은 ‘시스템의 오류’일 수 있다. 참여자가 제출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현장 크루가 확인을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분에게 책임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설득에 응했던 자신의 마음, 20분이라는 시간, 참여했다는 그 경험 자체였다. 그 현실은 분명 실재했고, 그것은 분명 데이터보다 큰 무게를 지닌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보면, 내 사비로 보낸 상품권은 어떤 보상이 아니라 메시지였다. ‘당신의 참여, 행위는 무시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응답. 시스템의 오류 여부와는 별개로, 그 사람이 느낀 분노가 관계의 파열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선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임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이 아직 살아 있는 순간이다. 완전히 끊어졌다면, 그 어떤 책임도 더 이상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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