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급하게 우체국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빵빵빵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을 하고 후두를 뒤집어 썼다. 한기의 공포를 물리치고자 후우, 한숨을 쉬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섰다. 추위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나에겐 겨울내내 있는 일상이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왔더니 포근하다. 엊그제 내린 눈도 녹고, 꽁꽁 얼었을 줄 알았던 공기가 말랑해졌다. 편하게 숨을 들이켜고, 기분 좋게 내쉬었다.
2026년 2월 4일. 입춘이다!
[밖] 어원 :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서는 것
동양 : 立(설 입) + 春(봄 춘)
그런데 이상하다. 들 입(入)이 아니라 立(설 입)이 쓰인다!
- 入(들 입)은 門(문) 안으로 사람이 들어서는 모습을 본떴다. 밖에서 안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움직임이다. 입학(入學), 입국(入國), 수입(輸入) – 모두 경계를 넘어 들어오는 행위다.
- 立 (립/입): 서다, 세우다의 뜻이다. 大(큰 대, 사람 모양) 아래에 一(한 일, 땅)을 그려 ‘땅 위에 사람이 서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확립하다, 건립하다, 독립하다 같은 의미가 파생된다.
입춘은 入春이 아니라 立春이다.
24절기 중 네 계절의 시작은 모두 ‘立’이다. 立春, 立夏, 立秋, 立冬. 계절은 어디선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다. 음양오행 사상에서 계절 변화는 외부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 기운의 교체다. 봄은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땅 안에 이미 있던 생명력이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이다.
서양 : Spring, 튀어오르는 봄
영어 Spring은 고대영어 springan(튀어오르다, 솟아나다)에서 왔다. 독일어 Springen(뛰다), 라틴어 salire(뛰다)와도 연결된다. Spring water(샘물)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이고, Springboard(다이빙대)는 탄력으로 튀어 오르게 하는 판이다.
동양의 立(서다)이 수직의 안정감이라면, 서양의 Spring(튀다)은 폭발적 약동감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봄을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힘’으로 본다는 것. 봄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땅에서 올라온다.
말의 안팎을 살피며 깨닫는다. 오늘 나의 퇴사는 인생의 겨울에 미끄러져 ‘넘어진 사건’이 아니다. 나를 갉아먹던 타인과의 비교와 부당한 대우로부터 나를 스스로 ‘바로 세우는(立)’ 필연적인 계절의 변화다.
[안] 나를 세우다, 날을 세우다
“좋은 뜻으로 함께 시작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그동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아침의 우체국 건은 실은 마지막 미션이었다. 오후에 회사 대표님과 면담을 하면서 퇴사를 확정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의 서사, 얽힌 감정, 끝내 해결하지 못한 프로젝트 등은 몇 마디 짧은 인사와 어색한 침묵 속에 조용히 묻혔다. 담담하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여러 차례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이 쉬운 적이 없었다. 입사 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퇴사 때는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 불안했다.
그런데 이번 퇴사는 어쩐지 불안이 잠식하지 않는다. 모처럼 귀하게 주어진 백수 생활 동안 이것과 저것을 준비하고, 그간 마음만 먹었던 그것도 도전해보자, 마음에 날을 세웠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세계는 이미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