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명을 찾는다는 글

하정우 청와대 인공지능 수석이 사표를 내고, 부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뉴스로 또 나라가 들썩였다. 아, 설마했던 일, 기어코 벌어지는구나. 그럼 우리 AI는 누가 키우나? 소버린 AI, 전국민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겠다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는 어찌 되는건가! UAE에 수천 억 AI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더니, 그건 또 누가 어떻게 이어가는 건가.

AI 산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말 과기정통부 홍보 제안서를 준비하면서부터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지피티와 클로드에 의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AI 산업에 대해 그간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부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공부했다.

정부 보도자료를 읽으면, 마치 곧 우리가 전 세계 AI 시장에서 막 앞지르고 전 산업이 AI로 팍팍 성장할 것만 같다. 전 산업 ‘역량 고도화’는 물론, 디털 ‘안심 국가 실현’도 하고 이러저러한 ‘협력 체계’를 통해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어떤 국민적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와, 정말 이렇게 천지개벽할 변화가 생길수 있다고? 그런데 이제 그 선봉장이 없는데도 괜찮은가. 그보다, 정말이지 이 모든 변화가 진짜 가능한가? 나의 지피티와 클로드에 대한 의존도와 사용료만 계속 올라가는 중인데?

엊그제,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 하나를 발견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할 청년인턴 479명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19세부터 34세까지, 월 215만원, 12월까지 근무. 아동 야간연장 돌봄시설에 343명, 정신요양시설에 59명, 그 밖에 노인 학대 관련 시설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한 해가 달라질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런데 나는 이 뉴스를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찾아보니 사실은 보도가 됐다. 일요일 저녁에 몇 군데 매체가 기사를 올렸다. 뉴스핌, 경향신문, 프리진, 보건의료신문. 공중파에는 없었고, 포털 메인에도 없었다.

기사들과 보도자료를 나란히 놓고 읽어봤다. 거의 같은 글이었다. 한 곳은 차관 인용을 추가했고, 한 곳은 문장을 살짝 다듬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가 된 것이었다. 별표 형식의 시설 분류 불릿까지 그대로였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도자료는 금요일에 작성되어 일요일 정오에 배포되었고, 월요일 조간 엠바고로 풀릴 예정이었다. 그 사이에 디지털판들이 먼저 나왔다. 기자가 직접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할 의향이 있느냐” 물어볼 시간이 없는 구조다. 손댈 시간도, 손댈 동기도 없다.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가 된다.

보도자료의 언어가 곧 뉴스의 언어다. 그래서 보도자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보도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임까지 다시 읽었다. 알맹이는 있었다. 479명, 215만원, 다섯 개의 시설 유형, 세 개의 신청 사이트. 그런데 어떤 정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신청해야 하는가

다섯 페이지짜리 보도자료 어디에도 신청 마감일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근무 기간은 채용일부터 2026년 12월까지”라는 문장은 있지만, 신청 마감은 없다. 붙임에 “사업별 사업참여자 모집 및 교육(~5월)”이라는 한 줄이 있긴 한데, 이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다. 적어도 청년에게 하는 말처럼은 읽히지 않는다.

그 외에도 작은 균열들이 있었다. 본문에는 월급이 215만원이라고 했는데, 붙임에는 “4대보험 포함 1인당 세전 월 24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차액 25만원의 정체는 어디에도 설명돼 있지 않다. 본문만 읽은 사람과 붙임까지 본 사람이 가진 정보가 서로 다르다.

신청 사이트는 세 개다. bokji.net, kmental.or.kr, jaripon.ncrc.or.kr. 다섯 개의 시설 유형이 이 세 사이트에 비대칭적으로 분배되어 있다. 청년 입장에서는 본인이 어느 시설 유형에 해당하는지 먼저 판단하고, 해당 사이트로 들어가서, 거기서 다시 모집공고를 검색해야 한다. 통합 신청 페이지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차관의 인용구가 있다.

“이번 추경 사업은 청년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터가 되고, 사회복지시설에는 부족한 손길을 채워주는 ‘민생 맞춤형 정책’이 될 것이다.”

한 문장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터’, ‘부족한 손길’, ‘민생 맞춤형 정책’ ─ 세 개의 멋진 표현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은 거의 모든 기사에 그대로 옮겨 적혔다.

진짜 민생 맞춤형 정책인가.

보도자료를 자세히 읽어보면 청년의 업무는 회의체 운영(서류 준 및 다과 세팅), 서류 작성(한글 타이핑), 예산 정산 보조(그러니까 영수증 정리)로 행정보조의 역할이다. 돌봄 보조는 야간 귀가 확인 등의 일부에만 할당된다. 이것으로 직무 스킬이 축적가능할까? 돌봄 산업에 대해 얼마나 파악이 될까?

일자리 측면에서도 불합리하다. 돌봄 산업의 현장은 감정 노동의 어려움, 격한 신체 노동, 교대/야간 업무 구조 등의 난제로 기피 대상 일자리가 되고 있다. 인력난은 ‘돌봄’ 자체에서 발생하는데 정작 투입은 ‘행정’에 치중되는 꼴이다.

보도자료에서 정책의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단어들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부처와 부서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보인다. 십여 년 동안 보도자료를 다루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단어들을 쓰고 있었다. 다른 단어로 바꿔 쓰면 어쩐지 ‘보도자료답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단어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50개쯤 추리고 나니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것이 보였다.

첫째, 태도와 의지를 강조하는 말. 적극, 철저히, 선제적, 체계적, 지속적, 다각적, 전방위적, 긴밀히, 유기적, 실효적 같은 단어들. 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형용하는 부사·수식어들이다.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하는 자세에 관한 말이다. 자세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둘째, 시간과 속도를 강조하는 말. 조속히, 즉각, 적기, 상시, 수시, 지체 없이, 차질 없이, 중단 없이, 속도감 있게. 빨리 한다는 약속이지만 정확히 언제까지인지는 말하지 않는 단어들. ‘조속히 추진’한다는 말 옆에 날짜가 적혀 있는 보도자료는 드물다. 청년 인턴 모집 보도자료에 마감일이 빠져 있는 것도, 어쩌면 이 단어들의 친척이다.

셋째, 범위와 포괄성을 강조하는 말. 종합적, 범정부적, 촘촘한, 두터운, 빈틈없는, 입체적, 다층적, 근본적, 획기적, 유례없는. 다 한다는 약속이지만 무엇을 콕 집어 한다는 말은 없는 단어들.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약속은,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는 것과 닮아 있다.

넷째, 절차와 과정을 가리키는 말. 추진, 검토, 협의, 모색, 고도화, 활성화, 최적화, 가속화, 공고화, 확립. 행위가 아니라 행위를 둘러싼 행정의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들. ‘추진 중’이라는 말은 시작했다는 말도, 끝났다는 말도, 멈췄다는 말도 아니다. 그 모든 상태를 동시에 가리키며, 어떤 것도 단언하지 않는다.

다섯째, 가치 지향형 미사여구. 상생, 혁신, 체감도 높은, 현장 중심의, 미래지향적. 좋아 보이는 가치를 호명하지만 그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는 단어들. 차관의 ‘민생 맞춤형 정책’이 여기에 속한다.

이 다섯 가지가 보도자료에서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어떤 보도자료는 절반쯤 짧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보도자료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청년 479명을 찾는다는 보도자료에 신청 마감일이 없는 것은 누군가의 단순한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가 발견되지 않은 채 다섯 곳의 매체에 그대로 옮겨진 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이 언어 안에서는 마감일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 ─ 그것이 가장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는 말 옆에서는, 마감일 같은 건 그렇게까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사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내가 그 안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의 책임도 절반쯤은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과기정통부 제안서를 준비하면서 ‘AI 대도약’이라는 보도자료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내 제안서를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정부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십여 년 동안 비슷한 단어를 써오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이런 단어들을 쓰는 동안에는 글이 누구에게 닿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체감도 높은’이라고 쓰는 동안 그 정책을 체감할 사람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고, ‘청년 맞춤형’이라고 쓰는 동안 그 청년이 어디서 어떻게 그 글을 읽을지에 대한 상상은 멈춘다.

청년 479명을 찾는 보도자료에 마감일이 없는 것은, 결국 그런 상상의 정지가 문장으로 드러난 형태일 뿐이다.

마감일은, 누군가 이 글을 정말로 읽으리라고 가정한 사람만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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